국내 마약성 진통제 소비가 꾸준히 증가하며, 오‧남용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문지연 교수팀은 국내 처음으로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실태를 연구해 이 같이 분석됐다고 4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임상의학저널(Journal of Clinical Medicine)’ 최근호에 게재됐다.
우리나라는 1인당 마약성진통제 소비량이 연 55mg이다. 이는 전 세계 43위에 해당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58mg과 미국 678mg에는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현재 국내 마약성 진통제 소비량은 아시아 3위이고, 2005년에 비해 약 6배 증가했다.
무턱대게 과도한 규제는 우리나라처럼 사용량이 높지 않은 나라에서 오히려 환자의 통증 조절을 막을 수도 있다는 논란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간 국내에서는 정확한 통계와 연구가 없었다.
문 교수팀은 2017년과 2018년 국내 6개 대학병원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통증 조절 목적으로 처방 받고 있는 만성 비암성 통증환자 258명을 대상으로 의존성을 관찰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마약성 진통제 소비량은 적지만, 의존성은 21%로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이 높은 국가들의 오남용 발생률과 비슷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번 연구는 세계 최초로 마약성 진통제 중독보다 단계가 낮은 ‘마약성진통제와 연관된 의존성(코핑)’을 조사했다는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 병원측의 설명이다.
마약성 진통제 코핑(OrCC·Opioid-related Chemical Coping)은 마약성 진통제 중독보다는 약한 의존성을 보이는 상태다. 주로 수면장애나 기분장애 등에 대처하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오용하는 것을 말한다.
마약성 진통제 사용장애의 초기 현상 중 하나로 나타날 수 있으며, OrCC를 보인다고 중독이라고 할 순 없지만 대부분의 중독 환자가 OrCC을 보인다.
연구팀은 전문가 자문 모임 후 처방외복용·과량복용·잦은 처방전 분실 등 마약성진통제 의존 가능성이 있는 평가항목 7개를 적용해 조사했다.
그 결과 55명(21%)의 환자가 마약성 진통제 연관 의존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성 진통제를 만성적으로 처방받는 환자 5명 중 1명꼴로 오‧남용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서구에서 보고되는 오‧남용빈도 21~29%와 비슷한 수치다. 마약성 진통제 연관 의존성은 절대적 소비량에 상관없이 유사한 빈도로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 결과를 세부적으로 보면 젊은 환자, 기능성 통증, 두경부 통증, 알코올·약물 남용, 우울증이 있는 경우 마약성 진통제 연관 의존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마약성 진통제 연관 의존성을 보이는 환자는 하루 평균 모르핀 사용량이 약 169mg으로, 의존성을 보이지 않는 환자보다 약 30% 더 높았다. 진통제를 얻기 위해 응급실을 방문하는 빈도도 연 평균 36회로 약 2배 잦았다.
한편 의존성 여부와 관계없이 마약성 진통제를 장기간 복용하는 환자들은 불안감, 우울감, 심각한 불면증과 현저히 낮은 회복 탄력성을 보였다. 아울러 약 66.7%가 통증 때문에 자살을 생각했다고 응답했다.
마약성 진통제 연관 의존성은 △1년 이내 약물 남용병력의 경우 19배 △알코올 남용력은 7배 △기능성통증증후군 13배 △일평균 모르핀 사용량 200mg 이상인 경우 약 3.5배 더 높았다.
문지연 교수는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는 환자가 추가 처방을 위해 응급실을 방문할 때 진통제에 대한 의존성으로 인한 사용장애보다 실제 통증조절과 악화된 증상 치료를 위한 것인지 먼저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이번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문 교수는 이어 “국내에서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이 점차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마약성 진통제 사용장애에 대한 평가와 이에 대한 대처에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