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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골든 라이프] 시설 수용 정책에서 ‘Aging in place’로
[두근두근 골든 라이프] 시설 수용 정책에서 ‘Aging in place’로
  • 고종관 기자
  • 승인 2022.09.21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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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수용 정책에서 ‘Aging in place’로

​'고령화 준비됐나요?'를 시작하며

​명아주라는 1년생 풀이 있다. 재질이 단단하고 가벼운데다 키가 1m씩 자란다. 우리 조상은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를 청려장(靑藜杖)이라고 불렀다. 이를 짚고 다니면 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어 그야말로 장수의 지킴이었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그 옛날, 임금은 80세를 넘긴 노인을 축복해서 청려장을 하사했으니 이름하여 조장(朝杖)이다.

​100세 장수시대를 맞는 우리사회는 예전처럼 장수를 축복으로 여길까. 사회분위기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딱히 재앙이라는 노골적인 표현을 하지는 않지만 요즘 쏟아내는 논문이나 뉴스를 보면 우려 섞인 시선이 더 많다. ‘다음 세대의 무거운 짐’이 곧 노인이다. 

​‘노인의료비 폭탄’이라는 최근 기사를 봐도 실감이 난다. 제목에 ‘폭탄’이라는 단어를 쓴 것을 보면 노인은 ‘짐’ 정도가 아니다. 원폭이란 단어를 안 쓴 것만도 다행이랄까.

​수치를 보면 수긍이 간다. 2015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에게 건강보험공단이 지불한 요양비는 22조2000억 원에 이른다. 같은 해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예산이 51조9000억 원이니 만만치 않은 돈이 노인 진료비에 들어가는 셈이다. 문제는 이 수치가 인구의 고령화에 따라 급증해 2019년 30조원, 2025년 58조원, 30년엔 91조3000억 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의료비 증가는 불가피한 현상일까. 

​필자의 어머니는 3년여 전 낙상으로 요양병원 환자가 됐다. 그때부터 가족은 매달 100만원을 병원에 지불했다. 병원은 이와는 별도로 입원 노인 1명당 건강보험공단에 대략 월 150만 원을 청구한다. 낙상하는 순간 가정과 국가에서 월 250만원의 돈이 새나가는 것이다.

​2016년 기준으로 전국의 요양병원은 1428곳이다. 2006년 290곳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세다. 이는 물론 요양원은 뺀 수치다. 병상노인이 급증하면서 물먹는 하마처럼 의료비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령사회를 대비한 노인의료비 관리 방안’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연평균 입원일은 16.5일로 OECD 중 2위다. OECD 평균은 10.5일로 미국은 6.2일, 덴마크는 4.3일 수준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7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낙상에 의한 질병부담은 남성이 63.3%, 여성은 73.5%로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노인의료에 대한 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과 미국 등 서구의 정책을 살펴보면 된다. 

​일본은 이미 1997년 개호보험법을 제정해 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노인이 자립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육·훈련하고, 간호 및 요양서비스를 지원한다. 흥미로운 것은 주택개조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계단을 없애고, 안전바를 설치하는 등 낙상을 방지하는 시설비를 국가가 부담한다. 

​미국은 주정부와 비영리지원센터가 손을 잡고 주택개량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5월 고령자 주택관리법(HR 5254)을 통과시켰다. 주택소유자가 안전을 목적으로 자신의 집을 개조하면 주 정부가 3만 달러의 세금을 공제해 준다는 내용이다. 시공 대상은 입·출구 램프 설치, 출입구 확장, 손잡이와 안전바, 미끄럼 방지 바닥 시공 등이다.

​이를 위한 새로운 직업도 생겼다. 일본의 복지주거코디네이터가 그것이다. 이들은 노인의 집을 방문해 신체기능과 집안 구조를 평가한다. 그리고 안전설비를 시공한 뒤 국가에 비용을 청구한다. 

​일본에 주거코디네이터가 있다면 미국엔 작업치료사(Occupational Therapist)가 있다. 노인이나 장애자가 건강하게 사회에 복귀 또는 재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업군이다. 특히 노인에겐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노인용품 사용에 대한 실무도 돕는다. 

고령자에 대한 선진국의 정책은 이렇게 노인을 집단 시설에 수용하던 방식에서 자신의 집에서 계속 살도록 도와주는 ‘Aging in place’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장점은 많다. 우선 국가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의 연구기관에 따르면 가정요양이 집단시설 수용보다 3~5배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하나는 정서적인 안정이다. 노인들은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자신의 집에서 이웃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의 재정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금처럼 예방이 아닌 치료중심 의료, 또 가정이 아닌 병원 중심의 정책으로는 노인 의료비 증가는 답이 보이질 않는다. 국가가 정책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 장수노인은 짐이 되기도 하고,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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